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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밭두렁의 박문영: 음악인, 방송인, 문화운동가로 살아온 여정

주님과 늘 함께 2025. 5. 15. 17:09

1970년대 한국 포크 음악계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논두렁 밭두렁은 서정성과 진정성이 살아 있는 듀엣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중심에 선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박문영입니다.

 

그는 음악인으로 시작해 방송인, 작곡가, 문화운동가로 확장된 인생 궤적을 그려왔고,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포크 듀엣 논두렁 밭두렁의 시작

**박문영(예명: 박인호)**은 서울공대를 졸업한 공학도 출신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김은광과 함께 1973**포크 듀엣 논두렁 밭두렁’**을 결성합니다.

 

그들이 음악적 영감을 받은 대상은 국내에서는 산울림’, 해외에서는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과 같은 포크 듀엣이었습니다.

 

단출한 기타와 목소리, 그러나 깊이 있는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자 했던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 첫 데뷔곡: 1975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Young Family Series 4에 수록된 영상’ (김은광 작사·작곡, 박문영 기타 연주)

 

. 히트곡: 1978년 발표된 다락방’, 포근하고 섬세한 정서를 담아낸 명곡

 

 

📺 방송 제작자로의 전환: TBCKBS 시절

1970년대 후반, 박문영은 음악 활동 외에도 방송계에 진출합니다. 그는 TBC 동양방송 라디오 PD로 입사한 뒤, KBS로 이직해 PD이자 방송 작가로 활약하며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의 제작 철학은 진정성과 공감이었으며, 대중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시했습니다.

 

 

 

작곡가로서 남긴 대표작

 

박문영은 방송인과 음악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수많은 창작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국민적 애국가요로, 독도 영유권 인식 확산에 크게 기여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교육용 음악으로 전국 어린이들의 필청곡이 됨

김치 주제가한국의 전통음식 문화를 알리는 캠페인 송으로 활용

 

 

👦 어린이 문화 교육자의 삶

단순한 음악 창작에 그치지 않고, 박문영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문화 교육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그는 **‘어린이 역사 노래회’**를 설립하고, 역사 캠프와 노래 교실을 운영하며 음악을 통한 역사 교육에 힘썼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노랫말에 교육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냈습니다.

 

 

 

🧑🤝🧑 아내의 눈과 손발이 된 이유

박문영의 삶에서 가장 감동적인 전환점은 아내의 시각장애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내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이라는 난치성 질환으로 시력의 95% 이상을 상실했습니다. 박문영은 사랑하는 아내가 존엄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고, **‘아내의 눈과 손발이 되겠다’**는 고백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 헌신은 단지 간병을 넘어서, 사랑의 실천이자 신앙적 순종의 표현이었습니다.

 

 

🍩 서울공대 출신의 미국살이와 도넛 이야기

서울공대를 졸업한 박문영은 과거 한동안 미국에 체류하며 도넛 가게 운영과 일용직 노동을 경험했습니다. 미국살이는 그의 삶에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었고, 고된 노동 속에서도 그는 늘 음악과 교육에 대한 비전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교육 활동과 삶의 겸손한 태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론: 시대를 노래하고, 사람을 섬기다

 

박문영은 단순한 가수가 아닙니다. 그는 시대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 사람과 문화의 가교가 된 방송인,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자, 그리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노래보다 깊고, 방송보다 생생하며, 교육보다 가르치는 바가 큽니다.